【칼럼】 퍼포먼스 아트와 음악의 경계사|신체·행위·소리가 교차하는 20세기 이후의 실천
Column ko Avant-Garde Contemporary Art Performance Art
서장 : 소리는 언제부터 ‘행위’가 되었는지
문장:mmr|테마:퍼포먼스 아트와 음악이 교차해, 신체·시간·공간이 재정의되어 온 역사를, 사실만으로부터 추적하는 장편 고찰
음악은 오랫동안 작곡이라는 설계행위와 연주라는 재현행위의 조합으로 이해되어 왔다. 거기에서는 악보가 중심에 있었고, 소리는 시각화된 정보의 실현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 이 전제는 급속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산업화에 의한 도시 소음, 녹음 기술의 보급, 대중문화의 확대는 소리를 ‘제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환경으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변질시켰다.
동시에 미술 영역에서는 완성된 물체보다 제작 과정이나 행위 자체에 가치를 찾는 움직임이 강해진다. 회화나 조각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 시간 경과, 관객의 반응이 작품의 일부로 의식되게 되었다. 음악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장에서는 소리가 곡이라는 틀을 넘어, 행위나 상황으로 재검토되기에 이른 역사적 배경을 정리하고, 후속하는 각 장의 전제를 명확히 한다.
소리가 행위로 인식된 순간, 음악은 미술과 같은 지평에 서기 시작했다.
제1장: 미래파와 소음의 해방
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사람들의 감각 환경을 일변시키고 있었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공장의 가동음은 그때까지의 음악이 상정하지 않았던 음압과 지속성으로 도시를 채웠다. 미래파 예술가들은 이 변화를 퇴폐가 아니라 진보로 파악해 예술 측에서 적극적으로 긍정하려고 했다.
루이지 루솔로가 구상한 인토날모리는 음정보다 음색과 노이즈의 질감에 초점을 맞춘 장치이다. 핸들을 돌려 레버를 조작하는 연주 행위는 악기 연주라고 하는 것보다 기계 조작에 가까워 시각적으로도 강한 인상을 주었다. 관객은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연주자의 신체 동작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이미 음악은 귀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상의 행위 전체로 제시되어 있었다.
소음을 음악에 끌어들인 행위는 연주라는 개념 그 자체를 재정의했다.
2장: 다다와 우연성 도입
다다의 활동에는 통일된 양식이나 기법이 없다. 그 대신 공유되고 있던 것은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불신감이다. 카바레 볼테르에서 열린 야회에서는 시의 낭독이 외침으로 바뀌어 음악이 소음에 녹아 신체 동작이 돌발적으로 삽입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사전에 엄격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 점에 있다. 우연의 연쇄, 연자의 기분, 관객의 반응이 그대로 작품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 음악은 더 이상 재현되는 대상이 아니며, 그 자리만의 사건으로 생성된다.
이 태도는 후년 즉흥 음악이나 퍼포먼스 아트에 있어서 오픈한 구조의 원형이 된다.
우연을 받아들인 순간, 작품은 제작자의 손을 떠나기 시작했다.
3장: 존 케이지와 침묵의 전환점
존 케이지는 음악을 구성하는 주체가 작곡가라는 전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했다. 《4분 33초》에 있어서, 연주자는 무대에 존재하지만, 의도적인 발음 행위를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그때까지 무시했던 환경음에 의식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 구조는 음악을 ‘만드는’ 행위에서 ‘듣는’ 행위로 중심을 이동시켰다. 작품은 음향적인 내용이 아니라 시간 프레임과 주의의 방향으로 성립한다.
이 사고 방식은 나중의 퍼포먼스 아트에서의 프레이밍의 사상과 직결되어 있다.
음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듣는 태도가 전경화됐다.
4장: 과당과 일상 행위의 음악화
프룩서스가 제시한 최대의 전환점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특별한 기능을 해체한 점에 있다. 이벤트 점수는 전문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고 모두가 실행할 수 있는 지시문으로 쓰여졌다. 거기에서는 정확성이나 완성도보다 행위가 실행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시된다.
예를 들어, 일정 시간 동안 계속 서서 물체를 움직이거나 뚜껑을 열고 닫는 행위는 전통적인 음악적 가치 결정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소리와 침묵, 시각적 긴장은 관객의 주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여기서 음악은 청각 예술이기 전에 시간 구조를 가진 행위로 재정의되었습니다. 프룩서스의 실천은, 후의 컨셉츄얼 아트나 퍼포먼스 아트에 직결해 간다.
행위를 음악으로 제시한 것으로 무대는 일상으로 확장되었다.
제5장: 신체 표현으로서의 소리
1960년대 후반 이후 신체 자체를 소재로 하는 표현이 급속히 퍼졌다. 이 흐름에서 음악은 외부에서 추가되는 요소가 아니라 신체 활동의 결과로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호흡음, 성대의 마찰, 바닥을 밟는 소리는 확성장치에 의해 증폭되어 공간 전체에 퍼진다. 관객은 소리를 듣는 동시에 그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신체의 긴장과 피로, 집중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 구조에서 소리는 신체의 연장이고 신체는 악기가됩니다. 음악과 퍼포먼스 아트는 동일한 행위를 다른 감각으로 경험시키는 장치로서 중첩된다.
몸이 울릴 때, 음악은 시각 예술과 불가분이 된다.
6장: 실험 음악과 공연의 공진
실험 음악의 영역에서는 음향 구조와 동시에 연주 행위의 지속성과 집중 상태가 작품의 일부로 취급되었다. 장시간 반복되는 문구와 약간의 변화만 일어나는 구조는 연주자의 몸에 강한 부하를 준다.
관객은 소리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과 동시에, 연주자의 자세나 호흡, 시선의 움직임에 주의를 돌린다. 음악 체험은 청각 중심의 감상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체험으로 변질한다.
여기에서는 연주라는 행위 자체가 퍼포먼스로서 전경화되고 있다.
연주를 보는 행위는 듣는 행위와 같은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7장: 전자 음악과 조작 행위의 시각화
전자악기의 등장은 음악 제작과 연주의 관계를 크게 바꿨다. 노브를 돌리고 스위치를 전환하고 매개 변수를 조작하는 행위는 즉시 음향 변화로 나타납니다.
이 반응은 연주 행위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관객은 소리의 변화와 신체 동작의 인과 관계를 직접 목격한다.
전자 음악에 있어서, 연주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조작하는 행위 그 자체가 되었다.
기술은 소리를 늘린 것이 아니라 행위의 층을 증폭했다.
8장: 클럽 공간에서의 집단적 성과
클럽 문화에서 음악 체험은 개인 감상이 아닌 집단적 행위로 성립한다. DJ 부스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조작실이기도 하다. 레코드를 선택하고 믹서를 조작하는 행위는 관객의 신체 반응과 직결되어 있다.
댄스 플로어에서 개별 신체는 리듬과 동기화되어 집단으로서의 굴곡을 형성합니다. 여기서 음악은 공간 전체를 구동하는 장치가 되어, 관객 자신이 퍼포먼스의 담당자가 된다.
청중이 참가자가 되었을 때 무대는 사라진다.
제9장:미술관・페스티벌과 하이브리드화
21세기에 들어서자 미술관과 음악 축제의 기능적 차이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전시공간에서 행해지는 음향작품은 시간 지정의 퍼포먼스로서 제시되며, 음악 이벤트에서는 영상이나 공간 설계가 전제조건이 된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며 몸을 놓아 체험을 완성시킨다. 장르의 구분은 운영상의 편의에 지나지 않고, 체험 설계야말로 작품의 핵심이 된다.
경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질문의 초점이 이동했다.
연표: 퍼포먼스 아트와 음악의 2층 타임라인
그림 : 음악과 공연의 겹침
종장 : 경계를 넘는 태도
퍼포먼스 아트와 음악의 관계사는 단순한 장르 횡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소리, 신체, 시간을 어떻게 파악할지라는 인식의 변천 그 자체이다.
작품이 물체에서 사건으로, 음악이 재현에서 행위로 이행했을 때, 양자는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무엇이 작품인지, 누가 주체인지,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예술 체험인지의 질문은, 지금도 계속 갱신되고 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견해를 계속 어긋나는 태도에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