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던 서울이란 무엇인가?
| 문 : mmr | 테마 : 1960년대 영국에서 태어난 노던 서울이 어떻게 일본에 전파하여 독자적인 수용과 지지를 획득해 갔는지를 역사·문화·현장에 대해서 |
노던 서울이라는 말은 음악 장르인 동시에 특정 문화적 태도와 실천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성립하고 있다. 주로 196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미국에서 제작된 업템포의 서울 뮤직, 특히 상업적 성공에 이르지 못한 마이너 라벨의 악곡을 중심으로 영국 북부의 클럽 씬에서 열광적으로 지지된 음악 문화이다.
그 특징은 명확하다. BPM은 빠르고, 4박자가 강조되어, 혼 섹션과 역동적인 베이스라인을 갖추고, 댄스 플로어에서의 고양감을 최우선으로 설계되고 있다. 가사 내용은 연애나 실연을 주제로 하는 것이 많지만 사회적 메시지성보다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리듬과 그루브가 중시됐다.
중요한 것은 노던 서울이 ‘회고음악’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북부의 젊은이들에게는 과거 음악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갱신되는 플로어 뮤직이었다.
노던 서울은 음악 장르이기 전에 특정 청취 태도와 댄스 문화의 집합체로 형성됐다.
탄생 배경: 1960년대 영국 북부
노던 서울이 탄생한 배경에는 1960년대 영국 사회가 안고 있던 지역 격차와 젊은이 문화의 변용이 있다.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는 모드와 사이키델릭, 나중에 록 문화가 가시화되어 가는 한편, 북부의 공업도시권에서는 다른 형태로 미국 흑인 음악에 대한 기울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맨체스터, 위건, 블랙풀, 셰필드 등 도시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젊은이들이 주말 밤에 클럽에 모여 장시간에 걸쳐 계속 춤추는 문화가 정착해 나간다. 거기에서는 최신의 히트곡보다, 아무도 모르지만 압도적으로 춤출 수 있는 악곡이 가치를 가졌다.
이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영국 북부와 미국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이다. 미국 남부와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서울 뮤직은 런던보다 오히려 북부 젊은이들의 감성에 강하게 울렸다. 노동, 억압, 연대 등의 주제가 일상감각으로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던서울은 영국 북부의 사회구조와 젊은이들의 신체문화가 교차한 지점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났다.
미국산 서울과의 관계
노던 서울의 음악적 기반은 미국에서 제작된 서울 뮤직에 있다. 다만, 그 대부분은 모타운과 같은 메이저 라벨 작품이 아니고, 지방 도시의 소규모 라벨로부터 릴리스된 싱글이었다.
디트로이트,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심지어 앨라배마와 텍사스 등 남부 지역에서 녹음된 무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영국의 클럽 DJ에 의해 발굴된다. 이 악곡은 미국 본국에서는 차트 들어가지 않고 묻혀 있었지만, 영국 북부에서는 댄스 플로어를 열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DJ들은 미국에 직접 매입에 가서 창고나 라디오국, 레코드점 안쪽에 자는 재고를 찾아냈다. 그 결과 같은 기록을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희소성이 가치를 가지고 노던 서울 특유의 ‘온리 원 문화’가 형성되어 간다.
노던 서울은 미국 흑인 음악의 재발견과 재평가에 의해 성립된 월경적 문화였다.
클럽 문화와 DJ의 역할
노던 서울에서 DJ는 단순한 선곡자가 아니라 문화의 큐레이터였다. 특정 DJ가 어느 레코드를 소유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클럽의 평가에 직결했기 때문에 선곡은 매우 전략적이고 경쟁적이었다.
대표적인 클럽으로 알려진 것은 맨체스터의 트위스티드 휠, 그리고 나중에 상징적 존재가 되는 위건 카지노이다. 이 클럽에서는 밤새도록 계속되는 올나이트 이벤트가 정상화되어 댄서들은 몇 시간 동안 계속 춤을 추었다.
DJ는 BPM이나 키뿐만 아니라 플로어의 피로도와 고조파를 읽으면서 세트를 구축했다. 레코드의 희소성은 중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춤을 추는지 여부’가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노던 서울의 현장에서는 DJ의 선곡 판단 자체가 문화의 진화를 결정하고 있었다.
댄스와 패션의 특징
노던 서울은 음악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댄스 스타일과 패션을 함께 발전했다. 댄스는 곡예로 스핀, 킥, 점프를 많이 사용하고 바닥을 미끄러지는 단계가 특징적이다.
이 신체 표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복장은 기능성이 중시되었다. 타이트한 청바지, 루즈한 탑스, 미끄러운 구두창이 정평이 되어, 패치나 배지로 개성을 표현하는 문화도 뿌리 내렸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유행으로서 위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댄스 플로어에서의 실천으로부터 필연적으로 태어난 스타일이었다는 점이다.
노던 서울의 신체 문화는 음악과 공간에 적응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1970년대 이후의 변화와 지속
1970년대에 들어서면 디스코나 펑크, 나중 하우스 등 새로운 댄스 뮤직이 대두해 노던 서울의 전성기는 일단 종식을 맞이한다. 그러나 문화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았다.
클럽의 폐점이나 장면의 축소를 거쳐도 컬렉터 문화와 리이슈, 회고적 이벤트를 통해 노던 서울은 보존·계승되어 간다. 1980년대 이후는 재평가의 움직임이 강해져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의해 젊은 세대에게도 알려지게 된다.
노던 서울은 일과성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해석되는 문화로 살아남았다.
일본 전파 : 기록과 정보
일본에 노던 서울이 전해진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다. 주요 경로는 수입 기록과 음악 잡지, 그리고 DJ끼리의 인적 네트워크였다.
일본의 서울 펑크 애호가와 DJ는 영국의 클럽 문화를 참조하면서 노던 서울을 컬렉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당초는 아는 사람조차 아는 존재였지만, 희소반 지향과 댄스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연결되어 서서히 지지층을 확대해 나갔다.
일본에서의 노던 서울의 수용은 정보의 단편화와 탐구심에 의해 지원되고 있었다.
일본 고유의 수용과 클럽 장면
일본에서는 노던 서울은 영국과 같은 형태로 재현되지 않았다. 올나이트의 전용 클럽보다 DJ 이벤트와 바, 레코드 숍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댄스보다 레코드의 음질과 판의 희소성, 오리지널 판에 대한 집념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어, 콜렉터 문화와 강하게 연관된 점이 특징이다. 한편, 춤추는 음악으로서의 본질은 유지되고, 플로어 지향의 이벤트도 계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일본의 노던 서울은 감상성과 신체성의 균형을 독자적으로 조정하면서 정착했다.
연표: 노던 서울의 주요 동향
연표에서 보이는 것은 노던 서울이 단절이 아니라 연속 속에서 계속 살아온 문화라는 사실이다.
구조도 : 문화의 흐름
노던 서울의 역사는 음악이 국경과 시대를 넘어 재문맥화되는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결론 : 노던 서울이 남긴 것
노던서울은 히트차트나 미디어 주도의 음악사와는 다른 축으로 성립한 문화다. 무명의 음악을 파내고, 몸으로 반응해, 동료와 공유한다고 하는 실천은, 현대의 DJ 문화나 클럽 문화에도 통한다.
일본에서의 인기는 결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그 지속성과 심도는 노던 서울이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태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노던서울은 음악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신체화하고,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지금도 계속 던지고 있다.